30대에 벌써 덕망이 높아 고승으로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묘향산의 중인 서산대사(1520년-1604년)와 금강산의 중인 사명당(1544년-1610년)사이에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전해져내려오고있다.

그중에는 이런 일화도 있다.

기골이 장대한 사명당은 서산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와 한번 겨루어볼것을 속다짐하였다. 그리하여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찾아 길을 떠났다. 세상형편을 한번 돌아볼겸 서산대사도 만나고싶어서였다.

원래부터 서산대사 못지 않게 학승으로 이름이 났던 사명당은 소문을 내지 않고 대사앞에 불쑥 나타나 겨루어보리라 생각하면서 황해도, 평안도일대를 돌아보고 묘향산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어린 중이 나타나더니 깍듯이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의아해난 사명당은 어린 중에게 물었다.

《네가 누구인데 나에게 인사를 하느냐?》

《저의 스님이 대사님을 모셔오라고 해서 마중을 나왔소이다.》

어린 중의 대답이였다.

사명당은 다시 그 중에게 물었다.

《너의 스님이 도대체 누구인데 나한테 보낸단 말이냐?》

《저의 스님은 서산대사님인데 오늘 금강산에서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저더러 어서 가서 모셔오라고 내보내셨소이다.》

과시 명성그대로라고 생각한 사명당은 머리를 끄덕이며 잡도리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어린 중을 따라 서산대사가 거처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서산대사는 사명당을 반겨맞아들이였다.

《먼길에 로고가 많았겠소이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소이다.》

인사를 하는 사명당은 대사의 모습을 눈여겨 살폈다.

몸집은 자그마한데 눈에 광채가 도는것이 호락호락해보이지 않았다.

사명당은 첫 상면에 떠보자고 이렇게 말을 걸었다.

《대사님, 여기로 오다가 고운 새 한마리를 잡았는데 이걸 대사님께 드려야 좋을지 놔줘야 좋을지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했소이다.》

사명당은 미리 준비했던 새 한마리를 장삼소매에서 꺼내놓았다.

그러자 서산대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사께서 소승을 찾아오시느라고 많은 수고를 하셨는데 제가 밖으로 나가 마중해야 좋을지 아니면 안에서 모셔들여야 좋을지 알수가 없어 이렇게 망설이고있소이다.》

사명당은 이로써 벌써 두번째로 무안을 당한셈이 되였다.

때는 임진조국전쟁이 일어나기 몇해전이라 사명당은 서산대사에게 오늘 나라에 뒤숭숭한 소문이 돌기에 한번 만나뵙고 의논하자고 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학문으로나 예언으로나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당해낼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기로 작정하였다.

《대사님, 세월이 뒤숭숭해서 뜻을 같이할 사람을 찾아 예까지 왔는데 오늘 대사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보니 대사님은 저의 스승이옵니다. 이 미흡한 소승에게 많이 배워주십시오.》

그러면서도 사명당은 체구가 장대한 자기가 이렇게 체소한 서산대사에게 머리를 숙이며 모시겠다는 말까지 하게 되는것이 어딘가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서산대사는 벌써 사명당의 이런 속마음을 넘겨짚고있었다.

《조그마하고 초췌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는것이 부끄러우면 기골이 장대한 대사님이 제 스승이 되시구려.》

사명당은 금시 얼굴이 벌개졌다. 사명당은 대사앞에 굴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대사님, 황송하옵니다. 소승은 진정으로 대사님의 제자가 되겠나이다.》

이때부터 사명당은 서산대사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로 되였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서산대사를 의병장으로 하고 자기는 그의 제자가 되여 원쑤들과의 판가리싸움에 나서 용감히 싸웠다.